Page 97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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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볼 수 없다. 성철 스님은 여기서 말하는 증지란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보았다. 완전한 깨달음, 최후의 깨달음인 정등각正等覺이 증지라는 것이
            다. 따라서 법성의 세계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며

            성문·연각·십지·법운지의 대보살조차도 알 수 없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여 장대비처럼 설법을 쏟아 부을지라도 구경각을 얻은 증지가 아

            니면 법성의 원융한 도리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곡해하면 중생
            은 법성을 알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

            면 법성을 꿰뚫어보는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는 뜻이므로 오히려 중생에
            게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가르침이다.



              중도의 자리에 앉아야 부처님



              법성게의 핵심은 결국 ‘두 모습 없음[무이상無二相]’으로 요약되고, 이는

            대립적인 양변을 모두 부정하는 쌍차雙遮로 설명되었다. 핵심이 중도이므
            로 중도의 체득을 강조하는 것으로 법성게는 끝을 맺고 있다.

              원융한 법성을 보는 증지를 성취하면 다라니의 무한한 보배들로써[이
            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온 법계가 보배 궁전처럼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

            음을 보게 된다[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실보전이란 어떤 실체적 공
            간이 아니라 실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말이다. 증지를 성취하면 시방세계,

            진진찰찰, 일체불찰이 그대로 보배 궁전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중생
            의 눈으로 보면 고해苦海로 보이지만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삼라만상이

            그대로 보배궁전이며, 하찮은 먼지 하나 조차 거룩한 보배궁전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깨달음의 눈이 열려 삼라만상이 보배궁전임을 보려면 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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