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고경 - 2019년 7월호 Vol.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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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려심과 집기심을 걷어내고 견실심을 얻어내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생각하는가? 우선 무언가가 계속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리
고 그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내일까지 숙제를
마쳐야 할 때에도 생각해야 하고 눈앞에 난동을 부리는 취객을 맞닥뜨렸
을 때에도 생각해야 한다. 의사가 계속 이렇게 살면 죽는다고 하니까 죽
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생각을 해야만 살아
갈 방법이 생긴다. 부지런히 생각을 해야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계기
가 마련된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생각해야 하고, 살아남으려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삶과 생각은 이렇듯 긴밀한 관계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삶과 생각은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생각이 곧 삶이다. 내가 생각한 만큼이 바로
현실인 것이다. 내 마음이 괴롭다고 여기니까 삶이 괴로운 것이요 부정적
으로 생각하니까 세상이 부정적인 것이다. 부처님도 내가 봐줘야만 비로
소 부처님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는 명제를 역易으로 해석하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명제에 도달한
다. 생각하지 않으면 현실은 아름답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다. 생각이 없
으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생각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촉감
을 느낀다. 불교에선 이러한 감각작용을 6식六識이라고 한다. 각각 안식
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에다가, 의식意識을 더해서 6식이
다. 불교에선 생각도 감각의 하나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
약 눈이 보지 못하고 귀가 듣지 못하고 코가 맡지 못하면 삶이 매우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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