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고경 - 2019년 7월호 Vol.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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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하여 『반야경』과 『중관론』 등에 의하여 무상대승無相大乘(곧 중관사상)을

           설한 것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 의도는 당시 인도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현장玄奘(600-664) 삼장에 의하여 성행한 유식唯識의 법상학法相學에 대항

           하기 위한 하나의 견제였다고 본다.
             당나라 의봉儀鳳 초년(676)에 중국에 와서 이후 약 10년간 일조 삼장이

           번역한 경론은 18부 部 34권으로, 번역된 경론을 보면 주술에 관한 밀교
           경전과 법상에 대한 유식 분야가 돋보이고, 중관 계통은 하나도 없다. 일

           조가 중국에서 인도 중관 계통의 불교를 번역 소개한 사실이 전혀 없다
           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조가 인도 중관파의 불교를 가져와 전했다는 것

           은 사실이 아닌 허구라고 하였다. 청변의 주요 저술 중에 『중론』의 주석서
           인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이 있다. 이 저술의 중국 번역은 일조 이전 프라

           바-카라미트라((Prabh  karamitra, 波羅頗蜜多羅)가 당의 정관貞觀 4년(630)부
           터 6년(632)에 역출하였다. 그러나 이 논서가 연구된 흔적도 없고, 이에

           대한 중국불교인의 주석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밖에 한역된 청변의 저술에 『장진론掌珍論』이 있다. 한역된 청변의

           저술은 이 두 가지 논서 뿐이다. 이 『장진론』도 중관 계통의 논서이지만,
           현장이 번역하였고, 주석서도 몇 가지 제작되었다. 그러나 대개 현장 문

           하에서 이루어진 『장진론』의 연구는, 전해지는 청변과 호법護法의 공유空
           宥 논쟁을 통하여 호법이 정의正義라는 것를 현양하는 데에 있었다고 생

           각되고 있다. 그래서 만약 청변의 『장진론』에 대한 번역과 연구를 가지고
           신삼론의 의미를 별도로 수립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일조가 아니라 모름

           지기 현장을 기준으로 구분해야 마땅할 것이라고 보았다. 법장이 『십이문
           론』에 주석한 것은 일조가 전한 인도 불교의 사정에 자극 받았는 지도 모

           르겠지만, 그것도 현장에 의하여 주도된 유식 법상학을 의도하여, 원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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