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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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원융하고 걸림이 없어 둥글기가 허공과 같고, 남음도 없고 모자람도
없다. 이 절대무한의 진리가 원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 원의 대표적인 상징
체가 달이다. 지리산의 신흥사와 연곡사를 중건했던 태능은 연곡사 향각香
閣에 제題한 시에서 진리의 본체를 찾는 길을 이렇게 담아내고 있다.
모든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아서 백천경권여표지 百千經卷如標指
손가락 따라 마땅히 하늘의 달 보아야 하네. 인지당관월재천 因指當觀月在天
달 지고 손가락도 잊으면 아무 일도 없나니 월락지망무일사 月落指忘無一事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잔다네. 기래끽반곤래면 飢來喫飯困來眠
달은 진리 또는 본질을 상징하고, 손가락은 경전 또는 수단을 의미한
다. 그래서 선사들은 수단이나 도구에 집착하지 말고 목적이나 본질을 추
구해야 함을 설파했다. 이 시의 진면목은 바로 직지인심 견성성불에 있
다. 수많은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과 같기에 손가락의 방향에
따라 달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달을 찾았으면 이제는 손가락을 잊어
야 한다. 손끝과 달을 모두 잊은 경지가 여여한 법체의 실상이기 때문이
다. 경전을 넘어 선에 들어가야 ‘깨달음’에 이른다는 메시지가 선명히 드
러나 있다. 이처럼 선이 강조하는 것은 분별, 조작, 시비를 떠나는 평상심
이다. 사량 분별을 버리고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듯 일상사로 되
돌아옴이 바로 삶의 실체요, 그것이 모든 법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러
한 천연스러운 일상생활, 이는 곧 화엄의 묘용이기도 하다.
심산유곡은 수행자들에게 더 없는 깨달음의 도량이었고, 그러한 자연
과의 교감은 한결 세외지미世外之美의 깊은 향기를 발한다. 태능의 시적
세계에서도 자연은 단지 대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연과 합일을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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