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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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듣느냐며 푸념을 하셨다. “왜 무슨 일이 있어요?”

              “사돈 댁 형제들 사이가 좀 안 좋아서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는 모양인
            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보고 왜 그런 데 중매를 섰느냐고 야단이니 나보

            고 어쩌란 말이니? 중매를 잘 해봐야 술이 서 말이요, 잘못하면 뺨이 석
            대라는 옛 말이 그르지가 않구나.”

              이모는 딸을 셋 두셨다. 그 가운데 가장 예쁘고 똑똑한 둘째 딸이 스물
            일곱 살로 세상을 떠났다. 나와 동갑이었던 딸을 잃은 이모의 심정이 어

            땠을지 짐작이 간다. 이모는 평소에 아들이 없는 것에 대한 서운함을 그
            딸로 상쇄시킬 만큼 의지를 했는데, 그 딸을 떠나보내고 부쩍 아들 없는

            타령을 많이 하셨다. 바로 위 세 살 터울 언니인 우리 어머니가 아들 셋을
            둔 것에 대한 시샘이 부쩍 커진 것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언니는 아들

            이 있으니까’ 하는 말을 달고 달았으니 어머니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딸을 잃은 동생 앞에서 매사 조심을 했을 터이나 어쩌다가 언

            니의 아들들이 효도하는 모습이라도 보는 날엔 영락없이 눈물을 흘리다
            가 사소한 것을 트집 잡아 횡 하니 집으로 가버리기도 했다.

              어머니는 ‘내 다시는 저 소갈머리 없는 인사 안 보고 살아야지’ 하시다
            가도 이것저것 싸들고 용인 이모네 집에 가서 달래주고 오던 차에 중매

            건으로 단단히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어머니와의 사이가 그러하니 우리
            도 이모를 뵙지 못했다. 우리 오남매가 나서서 여러 차례 어머니를 설득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속이 깊은 어머니답지 않게 받아드리질 않으셨다.
            두 분은 오랫동안 화해를 못하고 있다가 몇 해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장례 때도 이모는 오시지 않았다.
              언니와 막내 남동생에게 연락을 해서 이모 댁을 방문하기로 하고 이모

            께 전화를 드렸더니 ‘내가 너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면서 울먹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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