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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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 보장해 주라는 소개장까지 써주었다. 이렇게 해서 현장은 타클라

            마칸 사막과 천산산맥을 지나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인도
            에 도착하게 된다.

              장안을 떠난 현장은 무려 17년 동안이나 서역의 여러 나라와 인도 곳
            곳의 불적佛跡을 순례한다. 그리고 현장의 최종 종착점은 당시 불교학의

            요람이었던 나란타사那爛陀寺였다. 현장은 그곳에서 5년 동안 머물며 호
            법護法의 제자인 계현戒賢으로부터 『유가론』, 『비바사론』, 『정리론』 등 대소

            승의 교의를 두루 공부했다. 그리고 중관과 유식 두 종파를 융화하는 『회
            종론會宗論』과 외도와 소승의 교설을 비판하는 『파악견론』을 저술했다. 나

            아가 스승으로부터 학식을 인정받아 나란타사에서 여러 경론을 강설하기
            도 했다.

              험난한 구법여행과 불교공부를 마친 현장은 방대한 대소승의 경전을
            구해 귀국길에 오른다. 현장은 자신의 구법여행을 후원해 준 국문태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돌아가는 길에 고창국을 경유하려 했다. 하지만 고창국
            은 당의 북방정책으로 인해 이미 멸망하고 난 뒤였다. 이에 현장은 서역

            의 불교중심지 중 하나였던 호탄에 당도하여 황제에게 귀국을 알렸다. 태
            종은 국법을 어기고 떠났지만 현장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속히 귀국하

            여 황궁으로 들라고 했다.
              이렇게 현장은 장대한 구법여행을 마감하고 645년 정월 태종의 성대

            한 환대를 받으며 당나라로 귀국한다. 고창국 국문태의 극진한 배려와 후
            원으로 구법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고창국은 당에 의해 멸망하고, 오히려

            현장의 출국을 가로막았던 당나라가 현장의 모든 성과를 독점했다는 것
            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현장의 장대한 구법여행은 이렇게 끝났지만 그의 임무는 여행이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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