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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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순간 다시 시작되었다. 현장은 목숨을 걸고 가져온 구법여행의 결과물
들을 하나씩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는 664년 입적할 때까지 무려 19년 동
안 당 황실의 적극적 후원을 받아 수많은 경론들을 번역했는데, 그 분량
이 무려 1,338권에 달했다. 쿠차 출신의 역경승 구마라집 삼장이 번역한
경론이 73부 384권임을 감안할 때 현장은 그 보다 무려 3배나 많은 경전
을 번역한 셈이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후 700년 동안 185명의 역경승
들이 5,048권에 달하는 경론을 번역한다. 이 가운데 현장이 번역한 것이
무려 25%에 달하고 있어 중국불교사에서 현장이 남긴 업적을 짐작할 수
있다.
방대한 대·소승 경전 번역
현장은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 당대에 행해지던 경전 번역기법이나
번역어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당시까지는 주로 서역 출신 역경승들에
의해 번역이 이루어진 탓에 의미 전달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현장의 번역은 개념과 의미의 전달이 정교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리하여 현장 이후 진행된 번역은 현장의 번역이 모범사례로 준용되기
시작했다. 역경사적 측면에서도 구마라집의 번역을 구역舊譯이라 부르는
반면 현장에 의해 개척된 새로운 번역을 신역新譯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장의 업적은 이처럼 방대한 경론의 역출에만 그치지 않는다. 중국불
교사에서 현장의 역할은 유식학과 관련된 경론을 번역하여 중국불교계에
새로운 자양분을 수혈한 것을 꼽을 수 있다. 현장에 의해 유식문헌이 번
역됨으로써 유식을 기본으로 하는 법상종法相宗이 성립하고, 현장은 법상
종의 개조로 추앙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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