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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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한 걸음 산문을 나오는데 보보출산문步步出山門
새가 울고 꽃은 시냇물에 떨어지네 조명화락계鳥鳴花落溪
골안개 자욱하여 가는 길 희미하고 연사거미로烟沙去路迷
천봉에 내리는 빗속을 홀로 서 있네 독립천봉우獨立千峯雨
산문을 나오니 꽃잎 지고 새가 울고 있다. 그런데 세상을 돌아보니 임
금과 관리는 불교를 탄압하고 있다. 붓다를 찾는 백성들의 소리는 외면할
수 없다. 하여 선사는 탄압에 굴하지 않고 외로이 법등을 지키겠다는 결
의를 다진다. 그것은 골짝의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
도이고, 비 내리는 수많은 봉우리 속에 홀로 서 있는 모습에서 선명히 드
러나고 있다.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불교 교단을 지켜내려 했던 선사의
응결된 호법의지가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불교탄압에 맞서 법등지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깊고 그윽한 산속이나 전망이 트인 높은 지대,
우뚝 솟은 바위와 하늘에 닿을 듯한 암자와 대臺 등은 속세를 떠난 공간
이다. 이러한 고소지향성은 수도자의 상승적인 정신적 경지와 맞물려
있다.
임수대에서 물을 가까이 마주하고 앉아 임수대전임수좌臨水臺前臨水坐
서운산 위에 돌아가는 구름을 바라보네. 서운산상망운귀棲雲山上望雲歸
물은 절로 맑고 푸르며 구름은 절로 희니 수자징청운자백水自澄淸雲自白
나에겐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다네. 여오무시역무비與吾無是亦無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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