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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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양 교외에 와 주둔하면서 군수물자를 보내라는 서신에 문무왕이 고

           민하고 있을 때 김유신은 왕을 안심시키고는 김춘추의 아들 김인문 등과
           고구려 국경으로 들어가 식량을 수송하고 돌아온 일화를 전하고 있다. 그

           리고 회군을 암시하는 소정방의 소식에 패강(지금의 청천강)을 아직 다 건
           너지 못했는데 고구려 군이 쳐들어와 미처 건너지 못한 군사들이 죽게 되

           자 이튿날 김유신은 고구려 군을 뒤쫓아 반격하여 수만 명을 붙잡아 죽였
           다고 하였다.

             당나라 군사가 백제를 평정하고 돌아간 후 남은 적을 소탕할 적에 고구
           려와 말갈의 군사에게 포위를 당해 신라군이 매우 위태로웠다. 이때 김유

           신이 왕께 달려와 말하기를 “형세가 위급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미치지 못
           하고 오직 신술神術로써 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산에 단

           을 쌓고 신술을 닦으니 갑자기 큰 독만 한 빛이 단 위에서 나타나 별처럼
           북쪽으로 날아갔다. 성 안의 고립된 병사들은 구원병이 이르지 않아 원망

           하고 두려워하였는데, 적들이 곧 공격하려고 하자 갑자기 남쪽 하늘에서
           빛이 비치더니 30여 군데의 적군의 포차를 깨뜨렸다. 또한 적군의 활과

           화살이 부서지더니 군사들이 모두 땅에 쓰러졌다가 깨어나 달아났다.
             죽은 후에도 김유신의 위엄은 성성하였다. 신문왕 때에 당나라 고종이

           사신을 보내 작은 나라 신라에서 태종이란 칭호를 쓰는 것에 대해 힐문하
           였다. 이에 대해 “신라가 비록 작은 나라이나 성신聖臣 김유신을 얻어 삼

           국을 통일하였기에 태종으로 봉한 것”이라 하니 당 황제는 자신이 태자로
           있을 때 하늘에서 노래하기를 “33천天 가운데 한 사람이 신라에 내려왔으

           니 바로 김유신이다.” 한 말을 기록해 두었던 것을 꺼내보고는 매우 놀라
           고 두려워 그대로 쓰도록 허락했다고 하였다.

             또한 기이편 미추왕과 죽엽군 조에는, 37대 혜공왕 14년에 김유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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