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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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갖고 계시는데 매일 봉당을 데우는 나무를 사과나무로 쓰고 계신다.
사과나무는 철분 성분으로 푸르스름한 색이 나타난다.
모든 것은 본래로 돌아간다
내가 느낀 신기함은 나무나 식물을 태운 재는 그 유전자를 버리지 않
고 그 본래의 색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가끔 십우도의 반본환원返本還源
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콩깍지를 태운 재는 누르스름한 색이, 사과나무를 태운 재는 푸르스름
함이 그리고 들깨를 태운 재는 약간 기름진 느낌의 불투명한 느낌이 나타
났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실험하고 느낀
부분이다.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면, 나무나 식물이 한 생生을 살고 태워져 재로
돌아가 그릇의 옷이 되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밀을 심었다. 워낙 태평농법이라 씨만 뿌리고 방치하는
방식이다. 사실 수확량을 크게 늘리기 위해 짓는 농사가 아니다보니 손
쓸 일이 별로 없다.
밀이 자라나는 전 과정을 살피는 것도 큰 재미였다. 작은 씨가 발아하
여 금 새 푸른 들판이 되고, 또 이삭이 피고 … 농사는 수익으로 치자면
완전 적자였다. 기계값이 더 들어갔으니까. 그러나 나에게는 보물 같은
밀을 태운 재가 있다!
재는 물에 담가 미끈거리는 성분을 빼내고 오래 숙성될수록 좋다. 옛
날에는 항아리에 오랫동안 썩히듯이 고약한 냄새가 나도록 숙성시켰다.
어차피 가마에 들어가면 냄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까. 오래 삭힐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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