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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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지 않는 애매하고 신비로운 말이다. 그래서 신비주의 연예인이 뜨듯,

           이 말도 크게 반짝거리며 유행했다. 더구나 죽음이라는 최고의 신비가 포
           개졌다. 성철 스님이 열반하자마자 ‘산은 산 물은 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어도 불교계에서 매우 존경받던 큰스
           님의 말씀이라니, 다들 높이 평가했고 나중에 써먹었다. 어디서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뇌까리면 불교 좀 공부한 것처럼 보이고 세상
           좀 아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이 원적에 든 지 26년이 흘렀건만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어느 부동산 관련 인터넷카페에서는 주택입지의 중요
           성에 관한 선견지명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숲세권’이라봐야, 산지에 있

           는 아파트의 가격은 강변에 있는 아파트의 가격을 절대 따라잡지 못한다
           는 것이다. 산에 간 것도 아니고 물에 간 것도 아닌데, 잘들 논다.




             잊혀지지 않는 중도 법문


             성철 스님은 1993년 늦가을에 돌아가셨다. 개인적으로 고3의 절정기

           였고 바빴으나 사회적으로 센세이션이 일어났던 건 분명히 기억한다. 나
           도 그 뜻이 궁금했다. 이제 와서는 맞건 틀리건 ‘중도中道’에 대한 또 다른

           비유라고 간신히라도 넘겨짚는다. 워낙 중도를 일관되게 강조했던 당신
           이다. 생전에 남긴 『백일법문百日法門』은 3권짜리 두꺼운 책이지만, 사실

           전부가 중도에 대한 요약이자 부연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중도가
           공空이고 무아無我이고 무상無常이고 연기緣起이고 법계法界이고 진리이고

           다 같은 말”이라신다. 나도 중도가 좋다.
             두꺼비에게 새집을 달라고 청한다. 헌집과 새집을 맞바꾸자고 한다.

           얼핏 치사한 짓이지만 그리 미안하지는 않다. 사실 두꺼비는 헌집이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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