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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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어서다. 두꺼비는 아파트 평수를 가지고 차별할
일도, 학군을 가지고 고민할 일도 없는 존재다. 뱀에게 잡아먹히지만 않
는 곳이라면 그에겐 하물며 쓰레기장이라도 훌륭한 집이 될 수 있다. 어
쩌면 헌집과 새집을 애써 구분할 필요가 없는 두꺼비가 인간보다 더 나은
신세라는 생각도 든다. 중도란 어디에서도 잘 수 있는 삶이며 이래도 좋
고 저래도 좋은 삶이다. 산에 살든 물에 살든 어디서나 족할 수 있는 삶
은, 마음이 언제나 평온하며 중심을 지킬 수 있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른의 법문은 따로 있다. 최잔고목最殘枯木.
제법 긴 글인데 옮겨보기로 한다.
“부러지고 이지러진 마른 나무막대기가 있다. 이렇게 쓸데없
는 나무막대기는 나무꾼도 돌아보지 않는다. 땔나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 땔 물건도 못되는 나무막대기는 천지간에
어디 한 곳 쓸데가 없는 아주 못 쓰는 물건이니, 이러한 물건
이 되지 못하면 마음 닦는 공부를 할 수 없다. 자기를 내세우
면 내세울수록 결국 저 잘난 싸움 마당에서 춤추는 미친 사람
이 되고 말아서 마음을 닦는 길은 영영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 쓸 곳이 없
는 대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영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 버리고, 세상을 아주 등진 사람이 되어야 한
다. 누구에게나 버림받는 사람, 어느 곳에서나 멸시당하는 사
람, 살아나가는 길이 마음을 닦는 길 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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