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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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주된 특징은 더위다. 모든 생명은 더위 속에서 괴로워하거나

           씩씩거리거나 짜증을 낸다. 다시 말해 괴로워하든 씩씩거리든 짜증을 내
           든, 더위에 반응해 더위에 값하고 더위와 동격인 행위들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위보다 비천한가.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다. 더위가 오면 더위가 됨으로써 완전한 병신이 되어야만 완전한 평온을

           얻는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지점이다. 내가 문원의 입장이었다면 한동안
           침묵하고 있거나 켁켁거리며 죽는 시늉을 했을 것이다. 죽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누군가 나를 험담하면 그 험담과 하나가 되어야
           만 한다. 누군가 나보고 개새끼라면, 그냥 개새끼인 줄 아는 것이 도道다.

           어차피 나란 놈은 껍데기니까. 최악의 상황을 버텨내면 그 어떤 상황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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