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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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중에 성근비가 지나가고,                   秋山疎雨過

               서리 맞은 잎 정원 이끼 위에 떨어지네               霜葉落庭苔
               하얀 개에게 소식을 전하고                      白犬通消息

               선정에서 깨어나 학을 타고 오도다.                 罷禪御鶴來


              자연은 단지 대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연과 합일을 추구하는 이상
            이며 그 자신의 해탈의 경계로 표상된다. 가을 산중에 성근비가 내리고,

            정원의 이끼 위에 떨어지는 서리 맞은 잎을 하얀 개가 물고 오는 자연의
            이법에서 깨달음을 증득한 것을 표현한 오도송이다. 화두를 타파하고 얻

            은 깨달음을 선정에서 깨어나 학을 타고 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분별과 차별을 뛰어넘은 무심의 경지에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심우’ ‘백척간두진일보’ ‘부모미생전’ ‘허공의 꽃’ 등은 선가의 전형적인
            어법이다. 선가에서는 소를 찾는 일을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일에 비유한

            다. 부휴는 어느 선승에게 준 다음의 시에서 도를 배우는 것은 별다른 것
            이 아니라 소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이고, 또한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나

            아갈 수 있다면 제불은 눈앞의 꽃[공화空華]에 지나지 않음을 설한다.



               스승을 찾아 도를 배우는 것 별다른 것 아니요  尋師學道別無他
               다만 소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이네                      只在騎牛自到家

               백척간두에서 능히 활보할 수 있다면                      百尺竿頭能闊步
               수많은 부처조차도 눈앞의 꽃에 불과하네.                   恒沙諸佛眼前花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것은 자기에게 이미 있는 불성을 다른 데서 찾으

            려하는 어리석음을 경책한다. 소를 타고 있으면 저절로 집으로 가는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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