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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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있다.
애국과 애민의 마음이 더 깊어진 것은 愛國憂民日益深
병화로 모든 집이 타버렸기 때문이네 只緣兵火萬家侵
비록 가슴 속에 충정심 가득하지만 滿空雖有忠情在
한 쪽 손이라 붉은 마음 나타낼 길 없네. 雙手無因露赤心
부휴는 직접 창과 방패로 무장하여 전장에 나가지 못했지만 제자 벽암
각성을 지도하여 전장에 나아가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하였다. 그런데 선
사는 병화로 모든 집이 불타버린 참혹한 상황을 목격하고 애국애민의 마
음을 절실히 느꼈다. 애석하게도 한 쪽 손만 있고 다른 손을 쓸 수 없어
전장에 나갈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는 충정과 자비심은 가슴 가득한 ‘붉
은 마음’이라는 표현에 선명히 응축되어 있다.
일념회기一念回機·일념회광一念回光·회광반조回光返照를 강조하여 임
진왜란 이후의 불교계를 정비하는 일에 힘썼던 부휴는 72세에 조계산 송
광사에서 방장산 칠불암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음 해 11월 상족제자 벽
암각성에게 법을 맡긴 후 원적에 들었는데, 세수 73세, 법랍 57세였다.
문도들이 사리를 수습해 해인사, 송광사, 칠불암, 백장암에 봉안하였으
며, 광해군이 홍각등계弘覺登階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선사의 700여 명
의 제자 중 벽암각성, 뇌정응묵, 대가희옥, 송계성현, 환적인문, 포허담
수, 고한희언 등이 있어 조선 중기의 불교계 11파 중 7파를 형성하여 법
맥을 드날렸으며, 취미수초, 백곡처능 등 뛰어난 시승이 그 가풍을 계승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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