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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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수밖에 없다.

              부휴는 세속을 결별하고 임천林泉에 은거하며 검박하게 살면서 출가자
            의 본분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덕화로 많은 대중들을 교화하였던 선사는

            웃음과 담소로 화합하고 또한 자연을 관조하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고
            자 했다. 하여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선사는 인간사는 허공을 지나는 한

            조각의 구름과 같은 덧없는 것으로 담아내고 있다.



                강호에 봄이 가고 꽃을 흩날리는 바람                 江湖春盡落花風
                해 저물녘 벽공을 지나는 한가로운 구름  日暮閑雲過碧空

                그로 인해 덧없는 인간살이 알았으니                  憑渠料得人間幻
                한 바탕 웃음 속에 온갖 일 다 잊네.                萬事都忘一笑中


              산하대지에 봄이 가고, 미풍에 꽃이 지는 것, 그리고 해 저물녘 푸른

            하늘에 한가로이 흘러가는 구름, 이들을 통해 선사는 인간사 모든 것이
            무상한 것임을 깨달았다. 흔히 삶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음은

            구름이 사라진 것으로 비유된다. 사실은 구름자체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
            서 선사는 한 바탕 크게 웃어 세상일을 잊고자 하는 것이다. 탈속한 산승

            의 세외지심世外之心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임진왜란 당시 부휴는 신체적 결함, 즉 왼손과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없어 전장에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산문에서 전선으로 나간 사형 서산
            과 사제 사명을 지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승으로서 승단질서를 확립

            하고 선문강령을 재정비하는데 진력하였다. 또한 전란으로 서로 뒤엉
            켜 나뒹굴고 있는 백성들의 시신을 땅에 묻어주고 그들을 위해 위령제

            를 지내주었다. 이러한 애국애민의 사상이 다음의 시에서 선명히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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