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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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타고 있는 소를 두고 또 다른 소를 찾고 있다. 문

           제는 백척간두에 올라선 것이 능사가 아니라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결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금강金剛의

           눈을 얻을 수 있고,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가 눈앞의 꽃, 즉 ‘공화空
           華’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선사들은 번다한 세속의 모든 일을 초월하여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간다.
           인생살이가 본래 고독한 것이기는 하지만, 출가 수행자의 경우 그 고독을

           친구나 스승으로 삼고 살아간다. 부휴라는 법호가 암시하듯이, 부휴 선사
           는 자신을 항상 자연 속에서 이리저리 부유하고 있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눈이 내려 온 천지가 하얗고 달빛 가득한 빈 절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끝없는 상념에 잠기는 모습에서 한결 극화되고 있다.



                흰 눈에 달빛 어리고 밤은 깊은데              雪月三更夜

                떠나온 고향생각 끝이 없네                  關山萬里心
                맑은 바람 뼛속 깊이 파고들고                淸風寒徹骨

                홀로 떠도는 나그네 시정에 젖네               遊客獨沈吟



             공림사라는 절에서 유숙하면서 지은 시이다. 설한雪寒에 외로움이 더
           해지는 깊은 밤, 고독한 선사는 잠 못 이루며 선정에 들고 있다. 달빛에

           눈이 흰 것인지 눈에 달빛이 흰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그네의 상
           념은 끝이 없다. 하지만 그 생각이 멎는 곳은 두고 온 고향이다. 출가자

           에게는 고향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선사는 몰려오는 망향을 ‘만리
           심’이라 하였다. 이 때 맑은 바람의 한기가 방안을 차갑게 하다못해 뼈 속

           으로 찾아든다. 그러니 선사의 시정詩情에는 말할 수 없는 간절함이 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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