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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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주고 있는 것은 사람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그 진리를 체득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진리를 체득할 수 있는 힘은 곧 치열한 수행정진에 있
음은 당연하다. 선사가 말하고자 하는 이 요지는 『대지도론大智度論』에도
등장한다.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의의불의어依義不依語, 의지불의식依智不
依識, 의요의경 불의불요의경依了義經 不依不了義經이 바로 그것이다. 차례
대로 해석하면 법에 의지하되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부처님이 말씀하시
는 진리에 의지하되 말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되 알음알이에 의
지하지 말라, 진실된 부처님 말씀에 의지하되 삿된 경전에 의지하지 말라
는 가르침이다.
약산 선사는 상당법문에서 양구(良久 오랜 침묵)를 통해 이 메시지를 대
중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사람에게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며, 알음알이에
천착하고 삿된 가르침에 빠지게 되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된다.
인류사회는 대부분 인간관계를 특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사
람에 기대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정서가 반영돼서 일까? 최근
검찰총수에 오른 한 인사의 과거 “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국민들로부터 적극 호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지도론』의 가르침처럼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뜻[진리]에 부합하려면
나아가고 물러서야 하는 때를 잘 살펴야 한다. 나아가고 물러서야 하는
때를 모르는 사람은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즉 진리에 부합하는 사람은
어느 때 나아가고 어느 때 물러서야 하는지를 잘 안다. 이를 잘 아는 사람
은 대중들로부터 존경받지만 모르는 이는 야유와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소설가 요산樂山 김정한(1908-1996)선생은 항일문학抗日文學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1936년 부산 범어사를 배경
으로 한 소설 「사하촌寺下村」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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