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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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조건이 만나는 것[접촉]에 의해 처음으로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에 감각기관[根], 인식대상[境], 인식작용[識] 중에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으
면 우리들의 앎[인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
다. 인식대상[境]은 감각기관[根]·인식작용[識]’과 만나는 것에 의해 변합
니다. 예들 들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산속에서 피는 한 송이 들국화
[인식대상]도 누군가의 감각기관[根], 인식작용[識]과 만나는 것에 의해 들국
화가 됩니다. 그래서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
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하였는지 모
릅니다. 즉 이와 같이 변화하는 것을 『성유식론』에서는 “변이變異로 분별
하다”라고 주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受·상想·사思 등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란 나머지 모든 심
소가 발생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식삼십송』에서는 촉
심소를 가장 먼저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촉은 앎[인식]을 생기게
하는 근거가 되는 중요한 심소입니다.
그런데 감산 스님은 『백법논의』에서 “촉은 마음을 이끌어 대상[境]에 향
하게 하는 것[趣]이다[觸則引心趣境].”라고 주석합니다. 또한 성철 스님도
『백일법문(중)』(p.313)에서 촉을 “마음을 끌어당겨 경계[대상]에 나아간다[引
心趣境].”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촉을 ‘마음을 대상에 접촉시키는 마
음작용’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각기관,
인식대상, 마음이 만나는 것[접촉하는 것]을 촉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철 스님은 이 구절을 풀이하기를 “마음을 끌어서 경계에 나
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능·소가 벌어집니다. 촉은 능能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고, 소所의 입장에서 말하면 수受입니다. 수는 대상의 모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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