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고경 - 2019년 11월호 Vol.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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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가 아닌 오늘은 어디서 하루를 보내나 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나이 오십이 되면서부터는 마음 한 켠에서 지금껏 살아왔던 삶에서 벗
            어나 이제 다른 방식의 삶을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시기적으로 마음의

            출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변화하는 과정에서의 혼란이 벼락
            처럼 후려쳤는지도 모른다.

              일본 선사 마스노 순묘 스님의 ‘인생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청
            소’라는 말이 와 닿았다. 그래서 심플한 상태로 ‘본래의 나’를 만나보고 싶

            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에게 필요한 것 보다는 필요 없는 것이 더 많이 나

            를 짓누르고 있었다.
              작업장에 들어서니 더 한심하다. 욕심껏 모은 온갖 재[灰]에 흙이며 양

            동이마다 유약 실험한 것이 무슨 유약인지도 모르는 것이 어지럽다. 또
            나무는 어떠한가. 나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또 재이고 재이고 ….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계속 헛발질만 해댄 셈이다. 남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도 벗어남 없이 모두 나의 문제였음을 깨달았을 때,

            내가 이 힘들었던 여름의 일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평생 알아채지
            못했겠지. 그러고 보면  참 고마운 여름이었구나.

              거침없이 일을 벌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어리석은 내 잣대로 남을
            분별하고….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거의 매일을 버리고 정리하는 걸로 보내고 있다. 이제 조금 가닥이 잡
            히는 것 같다. 책도 거의 대부분을 정리했는데 불교서적과 도자기 관련

            서적은 아직 정리가 안 된다. 마당의 나무도  휑할 정도로 자르고 흙과 나
            무를 보관하던 비닐하우스도 태풍에 비닐이 찟겨진 김에 아예 철거를 했

            다. 이것도 며칠이 걸렸다. 태풍 곤파스에 쓰러진 소나무를 많이 사들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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