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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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忽聞人語無鼻孔

                문득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頓覺三千是我家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六月燕岩山下路

                들사람 일 없이 태평가를 부르네                     野人無事太平歌



             ‘콧구멍 없는 소’. 그 소는 코뚜레를 뚫을 수 없어 고삐를 묶을 수 없
           고, 이리저리 끌려 다닐 일도 없다. 이는 분별심이 없는 본래면목을 본 것

           을 의미한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내외명철內外明徹이라고 하는데, 선사는
           이 경지를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집’은 본래심을 뜻한다. 사실, 깨닫고 보니 상대적 경계에 걸리거나 집착
           이 없고, 일 없는 들사람들이 태평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무애의 경지에 이른 환희심의 ‘오도송’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 경허는 세
           상 속에 살면서도 탈속한 대자유인으로서의 무애 자재함을 보여 주었다.



                속세와 청산이 어느 쪽이 옳은가                   世與靑山何者是

                봄볕 있는 곳 꽃피지 않는 곳이 없다네               春光無處不開花
                누가 성우의 가풍을 묻는다면                     傍人若問惺牛事

                돌계집 마음속 영원의 노래라 하리라                 石女心中劫外歌



             ‘천장암에서 부른 노래’로 세간과 출세간이란 이항대립의 관념을 초월
           한 격외의 도리를 보여주고 있다. 속세와 청산 어느 쪽이 옳은지 굳이 따

           질 필요 없다. 있는 자리가 어디든 봄볕만 비춘다면 꽃이 필 것이기 때문
           이다. 따라서 화자는 누군가 경허의 가풍을 묻는다면 석녀의 마음 속 영

           원의 노래라고 설파하고 있다. 경허의 이러한 선풍은 만공, 보월, 금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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