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P. 110
속에 한결 함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빛나고 태평스런 화창한 봄이여 熙熙太平春
볼수록 온갖 풀이 다 새로워 看看百草新
계룡산 자락에 내린 비 鷄龍山上雨
지난 밤 티끌을 다 씻었네 昨夜浥輕塵
방외의 촉목보리제觸木菩提濟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밝고 태평스러운
화창한 봄이고, 바라볼수록 새롭게 보이는 초목들이다. 간에 내린 봄비로
산하대지가 티끌을 깨끗이 씻기어 졌으니 만상이 청신하게 보인다는 선
사이다. 비에 씻겨 봄빛에 반짝이는 초목에서 사물의 형상뿐만 아니라 티
끌에 가려졌던 청정법신을 보고 있다. 이처럼 깨달음을 얻은 이에게는 모
두가 진여의 모습으로 법음을 노래하고 불법의 꽃을 피우는 것으로 다가
온다.
경허는 영호남지방 일대를 다니며 선풍을 크게 떨쳤다. 서산 개심사와
부석사 등에서 수행 교화하였고, 1894년 범어사의 조실이 되었으며, 또
한 1899년 해인사 퇴설당에서 경전간행불사와 수선사修禪寺 불사의 법주
가 되기도 하였다. 경허의 선정몰입의 기쁨은 성철 스님(1912-1993)이 방
장으로 사용했던 해인사 퇴설당 주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봄 가을 내내 참 좋은 날 많더니 春秋多佳日
마땅한 약속 지켜 풍년이 들었구나 義理爲豊年
달을 읽는 물고기 소리 고요히 들으며 靜聽魚讀月
하늘을 얘기하는 새와 웃으며 마주하네 笑對鳥談天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