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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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면히 계승되었다. 한편, 세상에 머물지만 물들지 않는 경허의 무심의

            평상심은 다음의 시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일없음이 오히려 일을 이룸이라                       無事猶成事
                사립문 닫고 한낮에 조나니                         掩關白日眠

                산새들이 나의 고독 아는지                         幽禽知我獨
                그림자가 자꾸 창 앞을 지나가네                      影影過窓前



              온 종일 잡일에 시달려도 무심의 경지에 이른 도인은 외물의 경계에

            미혹되지 않아 일삼을 것이 없다. 하여 한낮에도 사립문을 닫고서 할 일
            없이 조는 것이다. 스스로가 고요해지니 대상도 고요해져서 무심해 진다.

            그러데 화자의 고독함이 선창 앞을 자꾸 지나가는 산새들의 그림자에서
            확인된다. 자아와 대상의 존재성을 ‘무심’이라는 한 지점에서 공유하며 교

            감을 나누고 있는 선사의 모습이 선연하다.



                참으로 살기 좋은 조촐한 세계가 있으니                   有一淨界好堪居
                아득한 겁 이전에 이미 터가 마련되었네.                  窮劫已前早成墟

                나무계집과 돌사람 마음 이 본래 실다우니                  木女石人心本實
                별무리, 등불의 환영 같은 것도 헛되지 않네  星翳燈幻事非虛


              깨달음으로 터득한 청정 불성을 ‘살기 좋은 조촐한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이 조촐한 세계는 만상의 본체인 생명이며, 상대적 분별 이전의 절
            대적 경계로 생사가 없고 무위진락無爲眞樂을 누릴 수 있는 ‘적광토寂光

            土’이다. 경허의 이러한 깨달음의 충만과 법희선열은 자연을 매개한 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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