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7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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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하는 큰스님의 한가로움을 농락하는 선기를 발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선가의 보디랭귀지는 표현하는 이와 받아들이는 이의 해석이
제각각 다를 수가 있다. 또한 곡해의 순간도 있다. 법기法器가 다르면 제
대로 된 법거량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고봉 화상과 향곡 스님처럼 법기가
잘 다듬어진 이들에겐 매사가 법거량이다.
궁의 경지에 이르러야 이같이 서로 통하는 길을 가게 된다. 수십 번 궁
지에 몰려야 빠져나갈 방도를 알아챌 수 있다는 얘기다.
‘서래의’는 달마가 왜 중국에 오게 되었느냐는 질문이다. 불법의 대의
를 묻는 중국선사들의 대표적인 질문 방식이다. 이 답을 구하는 것이 출
가자들의 사명이자 이 답을 들려줘야 하는 것이 스승의 도리다. 하지만
이 공안은 그 답을 들려줄 수 없게끔 난해한 장면을 설정해 놓고 있다. 입
을 열면 떨어져 죽는다. 그렇다고 서래의를 묻는 이에게 답을 안 해 줄 수
도 없다. ‘보디랭귀지’는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가지만 입에 물고 위태롭게 지내는 사람에게 명
예와 권력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고관대실과 절세미인이 필요할 일이 뭐
있을 것인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일대 본분사를 해결해야 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을 더욱 더 궁지로 몰아넣어야 한다. 그래야 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
어낼 수 있다. 이 공안은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말하자면 궁즉통극즉반
窮卽通極卽反이다. 궁하면 통하고 극에 달하면 반전이 기다리는 법이다.
옛날 어느 왕이 두 마리의 매를 선물 받았다. 그 중 한 마리는 커서도
날지 못하고 늘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왕은 매를 날게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왕은 매를 키우는 한 농부에게
한 달 내 매가 날 수 있도록 하라며 숙제를 냈다. 매가 날지 못할 경우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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