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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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는 것, 우리 집 사람이 되려면 그 정도는 해야 된다는 일종의 강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보니 그렇듯 불교에 입문했으면 하고 바라면서
            도, 가볍게 풍광 좋은 절에 한번 데려가거나 수행 깊은 스님 한번 만나게

            해준 적이 없었다.
              예전에 독실한 기독교인인 나의 언니가 첫 사위를 맞으면서 가장 큰

            조건 하나를 내걸었다. 반드시 기독교인이어야 하며, 만일 신자가 아니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결혼을 허락한다는 조건이었다. 자라면서 동생들

            에게 무조건 양보를 하며 착하기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정도였던
            언니는 이 문제에서만큼은 전혀 양보가 없었다. 불교집안에서 자란 지금

            의 큰 사위를 결혼 전 교회에 나오게 해서 세례를 받게 하고 결혼시켰다.
            믿음이 없던 형부와 결혼해보니 참 기독교인이 되기까지 너무 힘들더라

            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 언니를 보면서 저 굉장한 편견이 상대방을 불
            행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똑 같은 상황에 처하니 나도

            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오만이 어디 있는가. 종교가 없으면 정성을 다해 나의 종교에 대

            해 좋은 면을 알리면 되고, 딸의 말처럼 천천히 이끌면 되는 것이다. 혹여
            사위가 다른 종교를 가지겠다고 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축복해주

            면 그만 아닌가. 나의 도반 한 분은 타종교인의 며느리를 얻고 그 종교에
            대한 공부를 3년 동안 했다. 열심히 두 종교의 장단점을 비교해보고 나서

            는 며느리에게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전했는데, 이에 감동한 며느리가 두
            말없이 불교로 개종했다. 지금은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어 시부모님이 하

            는 것처럼 늘 나누는 것에 앞장서고 있다. 일방적인 강요가 아니라 무엇
            보다 진심이 앞서면 만사형통이다 싶다.

              지금의 딸보다 훨씬 어렸던 이십대 초반, 불교에 입문해 공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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