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P. 56

들에게 백일 동안 기도와 함께 108배를 시키는 법사님을 찾아뵙고 너희

           들도 그렇게 하라는 나의 주문이 담겨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딸애가 내
           마음과 똑같을 줄 알았다. 요즘 코앞에 닥친 단행본 원고 마감으로 마음

           의 여유가 없어, 두 사람을 데리고 함께 가고 싶었으나 그러고 있질 못하
           던 차에 둘만 다녀오라고 한 것인데, 날이 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왜, 시간을 못내는 거야?”
             딸애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그런데 나만 다녀오면 안 될까? 절을 하면 좋다는 걸 나는 알지
           만 오빠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아.”

             불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3천배를 한다거나 매일 108배를
           하면서 기도를 하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 아

           직 말을 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애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불교
           집안에서 잘 성장한 청년이 우리 집 사위되기를 바랐다. 어려운 일이 아

           닐 것 같았고 그렇게 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사윗
           감은 종교가 없었고 그의 어머님은 타종교를 믿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차츰 공부하면 되니까.
             그러나 결혼 전에 꼭 100일 정도 기도를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인생

           에 대해,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것은 포
           기할 수 없었다. 나는 좀 낭패감을 느끼면서 딸애에게 물었다.

             “그러면 너도 결혼 전에 기도할 생각이 없는 거니?”
             “엄마, 나는 하고 싶어. 다만 오빠는 천천히 들어오게 하자는 거지.”

             그날 딸애와 얘기하면서 우선 나와 딸애가 선림사에 가서 1백일기도를
           입재하고 기도를 시작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내가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좋은 일이니 당연히 따라야



           54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