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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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소략하여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첫째 성경性境은 객관대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여 왜곡 없이 인식하
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경은 실재성을 갖고 있는 상분을 의미한다. 규
기는 ‘성경은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性境不隨心)’고 했다. 성경은 주관인 마
음이 대상이 되는 법法을 왜곡 없이 인식할 뿐 주관에 의해 조작되지 않
는다. 전5식과 제6의식이 바깥 경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성
경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대상이라는 종자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선악 등
과 같이 주관의 성질에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독영경獨影境은 실제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데 견분이 ‘혼자 그
려낸 허구적 이미지’를 말한다. 그래서 규기는 ‘독영경은 견분만을 따른다
(獨影唯從見)’고 했다. 객관대상을 사실대로 반영하지 않고 견분이 자의적
으로 만들어 낸 허구적 이미지[相]이기 때문이다. 마치 눈병난 사람이 헛
것을 보는 것처럼 견분의 분별에 의해 나타난 환영이 독영경이다. 거북이
의 털이나 토끼의 뿔 같이 마음이 자가발전 하여 실재하는 것을 실재한다
고 인식하는 것이 독영경이다. 따라서 독영경은 허상이자 실재성을 갖지
못한 허구적 인식[幻覺]을 말한다.
셋째 대질경帶質境은 객관의 상분도 존재하고, 주관의 견분도 함께 작
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규기는 ‘대질경은 심정과 본질에 통한다(帶質通情
本)’고 했다. 문제는 실재 대상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본질을 그대로 반연
하지 않고 견분에 의해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대질경이다. 예를 들어
어두운 밤길을 가다가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오인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
한다. 새끼줄이라는 객관의 상분도 실재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인식작용
인 견분도 작동한다. 하지만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왜곡한
것이므로 대질경은 착각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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