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20년 1월호 Vol.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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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밝은 달 티끌 한 점 없네                      炯然明月自無塵


              응 선사應禪師를 찾아 방장실에 갔다가 벌어진 일이 선명하게 표출되

            고 있다. 선정에 든 스님을 따라 방석 위에 좌선을 한다고 앉아 보았지만,
            그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가 문득 깨어난 정황이 묘출되고 있

            다. 세속의 얽힌 번뇌로부터 벗어난 잠깐 동안이나마 누려보게 된 한가로
            움의 극치이다. 즉 졸음을 떨치고 단정히 앉아서 모든 잡념도 사라진 선

            정의 상태에서 투명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선종에서 말하는
            ‘회광반조廻光返照’에 해당하는 이때의 마음 상태를 ‘한 점 티끌 없이 밝은

            달’에 비유하고 있다.
              불가에서 연꽃은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상징으로, 이는 곧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비록 불성을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깨
            치지 못하면 범부인 것처럼 연못 밖으로 나오지 않은 연꽃, 즉 피지 못한

            연꽃은 미오迷悟의 경지이다. 이규보는 청정한 가을 호수에서 ‘연꽃이 수
            면 위로 솟아오르는 상황’은 불성을 깨닫는 순간이고, 또 번잡한 사려와

            현상에서 해탈한 열반의 경지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새 한 마리 물속에 들며 푸른 비단물결을 가르니  幽禽入水擘靑羅
                온 연못을 뒤덮은 연꽃잎이 살며시 움직이네                     微動方池擁蓋荷

                선심이 원래 스스로 청정함을 알고자 하면                      欲識禪心元自淨
                맑고 맑은 가을연꽃이 찬 물결 속에서 솟은 걸 보소                秋蓮濯濯出寒波


              밤이슬을 맞고 피어난 연꽃은 선가에서 수많은 화두를 간직한 깨달음

            의 보고로 여겨진다. 이 ‘조용한 곳에 사는 새[幽禽]’ 한 마리가 먹이를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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