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고경 - 2020년 1월호 Vol.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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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주장했습니다만, 규봉 스님은 십신초인 보살지를 돈오 즉 견성이라
고 말하지 않았고, 또 그가 주장한 깨침이란 것은 단지 교학상의 이론을
아는 해오解悟를 말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조 스님은 한 걸
음 더 나아가서 돈오를 견성이라 하면서, 그 지위가 십신초라고 『절요節
要』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려시대의 큰스님인 보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잘
못되었겠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모든 경經이나 논論에
서는 분명히 삼현, 십지를 넘어선 구경각을 성취하는 것을 견성이라 하
고 있으니, 결국 보조 스님의 『수심결』이 『기신론』보다 낫고, 『열반경』보
다 낫고, 『유가사지론』보다 낫다는 말인가?
또 종문의 대표적 스님인 운문 스님보다 낫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습
니다. 결국 보조 스님이 『수심결』에서 말씀하신 ‘십신초에서의 돈오가 견
성’이라는 사상은 근본적으로 시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지보살이니 구경각이니 하는 그 깨달음의 경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무엇을 표준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데 대해서
궁금증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도 종문에 분명한 표준이 있습니다.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에 “보살지가 7지地가 되면 꿈속에서도 장애를
받지 않고 공부가 여여하다.”고 하였습니다. 참선 공부를 하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고 있을 때에도 아무 장애를 받지 않고 공부가 한결같으면
‘7지 보살’이라고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7지 보살이 설사 꿈에는
공부가 일여一如하다 할지라도 깊은 잠에 들면 캄캄합니다. 그런데 아무
리 잠이 깊이 들어도 일여한 경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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