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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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에워싸면서도 그림자도 형체도 없어 包塞虛空絶影形
온갖 형상 머금어도 본체는 항상 청정하네. 能含萬像體常淸
눈 앞 진경을 누가 능히 헤아린다 할 것인가 目前眞景誰能量
구름 걷힌 푸른 하늘에 가을 달은 밝아라. 雲卷靑天秋月明
온갖 형상 머금었어도 본체[본성]은 항상 깨끗하다는 「대원大圓」이라는
시이다. 허공을 감싸 않으면서도 그림자도 형체도 없는 것은 다름 아닌
청정한 마음이다. 이 청정한 마음에서 빚어진 삼라만상이 곧 법계이다.
선사는 그러한 참 경계를 깨닫고 나니 구름 걷힌 푸른 하늘에 가을 달[본
성]이 밝게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 나옹 선사는 원나라에 건너가 연경(현재 북경)의 법원
사에 주석하던 인도 스님 지공 화상을 만나 문답을 하였다. 나옹이 “산과
강, 대지는 눈앞의 꽃이요 / 삼라만상 또한 이와 같으니 / 자성이 원래 청
정함을 비로소 알면 / 티끌처럼 많은 세상 모두가 법왕신이네”(山河大地眼
前花 / 萬象森羅亦復然/ 自性方知元淸淨/ 塵塵刹刹法王身)라는 게송을 지어 올리
자, 지공 화상은 “서천에 스무 명의 깨달은 이가 있고, 동토에 72명의 도
인이 있다고 했는데, 나옹이야말로 일등이로다.”면서 나옹의 법기를 극
찬하며 인가하였다. 나옹은 지공 화상과 문답을 계속하였는데, 지공은 다
음과 같은 게송을 내린다.
선은 집 안에 없고 법은 마음 밖에 없나니 禪無堂內法無外
뜰앞 잣나무 화두는 아는 사람이 좋아하네. 庭前栢樹認人愛
맑은 누대 위에 맑은 햇살 비추는 날에 淸凉臺上淸凉日
동자가 세는 모래 동자만이 아느니라. 童子數沙童子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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