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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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선방 안에 없고, 법은 마음 바깥에 없다는 것은 내안에 있는 불성

            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뜰 앞의 잣나무’는 격식을 벗어난 말로, 선가에서
            잘 알려진 조주선사의 “뜰 앞의 잣나무”라는 화두를 말한다. 청량한 누대

            위에서 밝은 태양이 빛나고, 천진무구한 동자가 세는 모래는 동자만이 안
            다는 것은 청정한 불성을 의미한다. 지공이 법어로 내린 이 게송에 대하

            여 나옹은 ‘평상심이 곧 도’임을 명쾌하게 화답한다.



                집 없는 안에 들었다 밖이 없는 곳에 나오니  入無堂內出無外
                세계마다 티끌마다 부처 뽑는 곳이었네.                   刹刹塵塵禪佛場

                뜰 앞의 잣나무 새삼 분명한 모습이니                    庭前栢樹便分明
                오늘이 초여름 4월 5일이로다.                       今日夏初四月五



              나옹의 걸림 없고 탕탕한 선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무한한 시공간

            이 부처를 이루는 도량이 아님이 없는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한 소식 했
            으니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화두로 붙들었던 ‘뜰 앞의 잣나무’는 산하

            대지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일상적인 하루인 사월 초닷새
            일 뿐이다. 이처럼 진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과 더불어 사는 곳

            에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한편, 불교에서는 강조되는 지혜는 번뇌 망상의 근원인 어둠을 일소하

            고 밝음을 가져 온다. 때문에 청정심에서 나오는 지혜의 칼날은 무명을
            자를 때는 날카로운 칼이지만, 번뇌를 자르고 나서는 밝은 빛을 수반하는

            보배로운 칼이 된다. 이러한 지혜의 칼의 이미지를 나옹이 한때 고려에
            와서 양평 용문산에 머문 적이 있는 원나라 강남지방의 고담 선사에게 보

            낸 시 「행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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