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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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숭배물도 함께 들어왔으니 그야말로 대대적인 문
화 이식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문화 이식과 더불어 동쪽으로는 중국, 서
쪽으로는 그리스까지 교역이 이뤄지면서 교역 수단의 하나였던 화폐에
그들의 신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금화 혹은 은화의 진위여부를 신들이 보장해준 것일지도 모르
겠다. 그리스와 페르시아라는 지역에 갇혀 있던 신들은 이곳 간다라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더 큰 세상에서, 더 많은 역할을 인간으로부
터 부여받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의 ‘더 많은 역할’ 중에는, ‘대승’ 발
원지의 하나로 꼽히는 간다라에서 불상佛像과 보살상菩薩像 등이 처음 등
장하게 된 원인도 포함되지 않을까? 대승사상의 일부를 조로아스터와 연
관시키는 학자들의 견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속聖俗의 만남을 이끌어 낸 금화
불교는 ‘돈’을 번뇌를 야기시키는 물건의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까지 연대기상 최고最古의 불상, 다시 말해 부
처님 모습이 상像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쿠샨제국시대 카니쉬카왕의
치세 기간에 만들어진 사리함과 화폐에서다. 사리함이야 그렇다 하더라
도 화폐에 붓다가 등장하는 것은 왜일까?
물론 화폐에 불상이 등장하는 것이 이상할 만큼 불교와 돈, 불교와 경
제가 동떨어진 관계는 아니다. 농업보다 상업사회에서 불교가 성행했고,
상업사회에 기반한 장로들의 활동은 불교 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
다. 특히 아쇼카왕 시대, 상가의 매일 수입은 50만 금金이 넘었다. 그 가
운데 10만 금은 니그로다 비구에게 주었고, 10만 금은 불단에 향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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