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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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공양하는 데 바쳤고, 10만 금은 설법
사들에게 지불되었고, 10만 금은 상가에
분배되었고, 나머지 10만 금은 의약품을
사서 대중이 사용할 수 있게 도시의 사대
사진 2. 간다라 출토 화폐.
문에 비치하도록 했다. 2)
이와 같은 상황으로 짐작해본다면, 오히려 화폐에 불상이 등장하는 것
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당시 인도 외의 신들이 화폐·인장 등에
등장하는 문화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이
다. 여기에 아쇼카 시대부터 이미 교단과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출가자 개
인 소유의 사유재산이 있었던 점, 더욱이 ‘의약품’으로 대표되는 사회복지
활동에 교단이 적극적이었다는 점은 이미 불교와 자본이 사회를 향해 긍
정적 면모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간의 상황이 화폐에 부처님을 등장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
고 비록 성속聖俗의 다른 경계이지만 화폐를 통해 불교는 그리스와 페르
시아의 신들처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그 사상을 널리 전
파할 수 있는 새로운 전법사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측면으로 본다
면 화폐 속 부처님의 모습은 중생들의 먹고 사는 문제도 함께 고민하고,
항상 친근하게 내 옆에 계시는 분으로 인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종교를 논함에 돈, 자본, 경제 등의 용어는 거리가 멀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종교라는 단어 곁에 따라오는 것 자체가 거북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 페르시아의 신들이 정복전쟁의 등에 엎여 간다라까지 온
2) 에띠엔 라모뜨 지음, 호진 옮김, 『인도불교사』, 서울: 시공사, 2006, p.48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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