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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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없음이라는 극단에 집착하는 사유를 말한다. 이쪽과 저쪽을 구분 짓고

            집착하는 양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유식의 바른 뜻이 성립함으로 유식
            역시 중도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식의 근본 뜻을 알기 위해서

            는 생멸이나 유무로 대변되는 변견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 수 있다.
              성철 스님은 『성유식론』에 등장하는 “아와 법이 있는 것이 아니며[我法

            非有], 공과 식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空識非無] 있음을 떠나고 없음을 떠났
            으므로[離有離無], 중도에 계합한다[故契中道].”는 대목에 주목한다. 존재의

            실상에서 보면 ‘나[我]’라는 개체적 실체도 공空하고, 법法이라는 보편적
            존재의 실체도 공하다. 이렇게 나와 법이 모두 실체가 없음으로 비유非有

            가 된다. 그러나 비유만 고집하면 세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극단에 빠진다. 그런 견해에 치우친 사유를 단멸공斷滅空이라고

            하고, 공을 잘못 인식했다는 뜻에서 악취공惡取空이라 하고, 한쪽에 치우
            친 견해이므로 변견邊見이라고 한다.

              중도에서 말하는 공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멸공이 아니
            라 연기공緣起空을 의미한다. 모든 존재는 개체적 실체로써 고정불변의

            자아는 없지만 무수한 조건과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
            렇게 실체로써 존재하지 않으면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을 연기공이

            라고 한다. 만물은 자아의 고정된 실체를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타자들과
            역동적인 상호관계를 맺으며 생주이멸生住異滅할 수 있다. 존재의 그런 원

            리를 중관학에서는 공空이라고 했고, 만물의 근간이 되는 공에 해당하는
            것을 유식에서는 식識이라고 했다.

              대상적 존재들은 실체가 없는 비유이지만 존재의 원리인 공이나 식은
            존재함으로 비무非無가 된다. 성철 스님은 유식학의 이런 교설을 바탕으

            로 “아와 법이 공하다고 해서 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니,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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