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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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도 떠나고 없음도 떠나서 중도에 계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
서 성철 스님은 유식학의 근본 역시 중도이며 ‘공견空見이나 유견有見에
집착한 변견邊見’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비유비무
삼거 법사 규기는 『성유식론술기』를 통해 『성유식론』의 중도설을 계승
하여 유식의 중도사상에 대해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규기는 유식의
중도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공가중空假中이라는 삼제의 논리로 풀어내
고 있다.
“마음 밖에 실재하는 것으로 헤아리는 아我와 법法은 있는 것
이 아니고[我法非有], 진여의 공한 이치[眞如空理]와 능연의 진실
한 식識은 없는 것이 아니다[能緣眞識非無]. 혹 공은 그 이치이며
[空卽其理] 식은 세속의 일이어서[識卽俗事] 처음에는 있음을 떠
나고 나중에는 없음을 떠나기 때문에[初離有後離無] 중도에 계합
한다[故契中道].”
인용문에서 보듯이 규기는 유식사상에 대해 비유, 비무, 중도라는 세
가지 명제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비유非有로서 유를 부정한다. 마음 밖
에 실재한다고 생각하는[心外所計實] ‘나’라는 개체와 ‘법’이라는 보편적 존
재들은 실체가 없고 인연따라 성립한 것이므로 비유非有이다. 무수한 존
재들이 펼쳐져 있는 것 같지만 그 존재의 실상을 파고들면 본성은 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상적 존재들을 실재라고 생각하며 집착하는 중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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