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8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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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는 변함없는 하늘과 언덕의 모습에서 원융무애의 진리를 깨닫고
있다. 선의 묘지가 불이법문이다. 구름이 제 아무리 다양한 변화를 보인
다하더라도 하늘의 근본은 바뀌지 않고, 흐르는 물에 배를 띄우더라도 저
편 언덕의 경계는 그대로인 것이다. 그런데 시선의 집착은 곧 내 마음의
집착으로, 사실은 마음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은 원래 있는 그대로
인데 내 마음의 희비의 집착에서 웃고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움직임을 넘어서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함을 선사는 설파하고 있는 것이
다. 깨달음이란 이런 집착된 착각을 여의고 진여의 세계에 드는 것이다.
출가자가 끊임없는 수행정진의 길을 나서는 것도 ‘본래 한 물건이 없는’
바로 그런 경지에 이르기 위함이다.
아득한 구름 가엔 겹겹이 둘러싸인 산 雲邊千疊嶂
난간 저 밖엔 소리치는 개울물. 檻外一聲川.
열흘 동안 장마 비 아니었던들 若不連旬雨
비 개인 뒤 맑은 하늘을 어찌 알리. 那知霽後天.
항상 맑은 하늘에서는 하늘의 진정한 모습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계
속되는 장마에 언제 개일 것인가 기대하다가 드디어 드러난 맑게 갠 하늘
은 참으로 반가울 것이다. 첩첩 산중의 도량에 짙은 구름이 드리우고 열
흘 동안 계속되는 장마 비 그치고 난간 밖으로 소리치며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듣고 일신된 심경을 노래하고 있다. 먹구름이 닫힘의 이미지를 말
한다면 콸콸 흘러가는 냇물은 열림의 이미지이다. 여기에서 장마 비는 일
념 삼매를 뜻한다. 일념 삼매에 의해서 백천만겁의 번뇌 망상이 사라짐이
소리쳐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로 표상되고 있다. 드러나지 않는 미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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