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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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린 뒤뜰에 밤사이에 꽃이 피었다. 밤사이에 남몰래 핀 꽃향기가

           창을 열자 스며든다. 그때서야 꽃이 핀 것을 알았다. 비에 씻긴 공기도 상
           쾌하지만 꽃향기는 한결 맑아져 방안의 공기마저 신선하게 해 준다. 그래

           서 ‘효창신曉窓新’이라 했다. 하지만 웃는 듯 말이 없는 꽃이다. 꽃은 스스
           로의 존재에 우주의 생명을 안고 있기에 나고 죽음도 없고 절대적인 순간

           만이 있을 뿐 분별심도 없다. 필시 꽃은 무슨 생각이 있는듯하지만 말없
           이 웃기만 한다. 이것이 곧 염화미소의 메시지이다. 하지만 선원의 스님

           들은 이 웃는 의미를 모르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선사이다.
             그럼에도 편양은 만년에 자신의 삶에 대한 철저한 반조를 한다. 봄새

           가 우는 것이 산꽃이 지는 것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분별심에서 늙
           고 병드는 것을 슬퍼하고 한탄하는 것이라 하였다.



                봄새는 홀로 산꽃 시드는 걸 한탄하는데       春禽獨恨老山花

                꽃은 무심하여 스스로 슬퍼하지 않는구나.    花老無心莫自嗟.
                늙은 중은 매미의 버릇을 배우지 못해                  老僧不學拘蟬定

                새소리 듣고 꽃을 보며 해를 기울이네.                 聽鳥看花日欲斜.



             꽃은 스스로의 존재에 우주의 생명을 안고 있기에 나고 죽음도 없고
           절대적인 순간만이 있을 뿐 분별심도 없다. 그런데 봄새는 산꽃 시드는

           것을 한탄한다. 이는 분별하는데서 비롯된다.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경계는 그 나름대로 의미와 진실을 담고 있다. 설혹 깨달은 눈이 아닐지

           라도 낙엽이 지는 것을 슬퍼하고 꽃이 지는 것을 한탄하기 보다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윤회의 한 단면으로 본다면, 그것이 결코 슬퍼하거나 한

           탄할 일만은 아니다. 하여 화자는 매미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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