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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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참선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번거로움과 조급함이라고는 전혀 느껴
지지 않고, 그저 즐겁고 한가한 모습이다 담겨 있다.
밝은 창 앞에서 경전을 보고 晴窓看貝葉
저녁 침상에선 선정에 드네. 夜榻究禪關.
세상의 번화한 사람들이야 世上繁華子
어찌 세상 밖의 한가한 맛을 알리. 安知物外閑.
산사에서 자유자재한 출세간의 경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밭을 일구
어 차 그 잎을 따다 차를 끓이고, 나무를 베어 정자를 짓고 그 속에서 무
현금 소리를 즐긴다. 또한 해가 한창일 때는 창가에 앉아 경전을 보고, 해
가 넘어간 어둠 속에서는 참선에 열중한다. 이러한 삶은 다분히 서산 대
사의 선교불이禪敎不二의 사상을 그대로 전해 받아 실천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자족과 자락의 세외지미世外之美의 선심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는 시
편이다.
한편, 편양은 묘향산의 천수암과 금강산의 천덕사 등 여러 사찰에 주
석하면서 후학을 위해 개당 강법하여 널리 교를 선양하였다. 그럼에도 선
원의 스님들이 촌음을 아끼며 치열하게 수행 정진해야 함에도 헛되이 세
월을 보내는 것을 경책하기도 하였다.
비 내린 뒤뜰에는 밤사이에 꽃이 피어 雨後庭花連夜發
맑은 향기 스며들어 새벽 창이 신선하다. 淸香散入曉窓新.
꽃은 뜻이 있어 사람 보고 웃는데 花應有意向人笑
선방의 스님네들 헛되이 봄을 보내네. 滿院禪僧空度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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