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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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고 해도 볼 수 없는 허공까지도 항상 설법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온 시방세계에 설법 안 하는 존재가 없고 불사佛事 안 하
           는 존재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만 불교를 바로 알 수 있는 것

           입니다. 이렇게 되면 누구를 제도하고 누구를 구원한다고 하는 것은 모
           두 부질없는 짓입니다. 근본요根本要는 어디 있느냐 하면 본래면목本來面

           目, 본래부터 성불한 면목, 본지풍광本地風光, 본래부터가 전체 불국토라
           는 것, 이것만 바로 알면 되는 것이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소용없는 것입

           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참 좋은 법이야. 우리 모두가 불국토에 살고, 우리 전체가 모두 부처

           라고 하니 노력할 것이 뭐 있나. 공부도 할 것 없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아무래도 안 좋은가.’

             이는 근본을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본래 부처이고, 본래 불국토이
           고, 본래 해가 떠 온 천지를 비추고 있지만 눈감은 사람은 광명을 볼 수

           없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이지만 눈감고 있으면 캄캄한 것입니다. 비유
           하자면 깨끗한 거울에 먼지가 꽉 끼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거울은 본래

           깨끗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다 비춥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먼
           지가 꽉 끼어 있으면 아무것도 비추지 못합니다. 명경明鏡에 때가 꽉 끼어

           있으면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것, 여기에 묘妙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래 부처라는 이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내가 본래 부처다,

           내가 본래 불국토에 산다, 이것만 믿고 공부를 안 해도 된다, 눈뜰 필요
           없다, 이렇게 되면 영원히 봉사를 못 면합니다. 영원토록 캄캄 밤중에 살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자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슨 자신을
           가질 수 있느냐 하면, 설사 우리가 눈을 감고 앉아 광명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광명 속에 산다는 것, 광명 속에 살고 있으니 눈만 뜨면 그만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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