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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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引心趣境)’이라고 설명했다. 인식의 주체인 마음을 움직여 대상으로 향
하게 하고, 대상과 만나게 하는 단계가 촉이다. 이 단계에서 주관과 객관
이라는 능소能所가 발생한다. 촉은 능의 관점에서 마음을 움직여 경계라
는 객관대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 단계는 ‘수受’인데 감산은 ‘경계의 모습을 받아들임(含受境相)’이라
고 해석했다. 객관대상으로 향한 마음이 대상의 정보를 받아들여 지각하
는 단계이다. 성철 스님은 촉이 능의 입장에서 표현한 것이라면 수는 소
所의 입장에서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물론 여기서 능소는 아뢰야식 상
태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작용이기 때문에 범부가 인식할 수는 없다.
다음 단계는 ‘상想’으로 감산은 ‘자신의 경계를 세워서 명언을 시설함(安
立自境施設名言)’이라고 했다. 객관대상으로부터 받아들인 정보에 대해 자
신의 판단을 거쳐 대상을 구별하는 표상表象의 단계이다. 대상을 표상하
는 과정에 이르면 비로소 명칭과 언어가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사思’로 감산은 ‘마음을 부려서 선·악업을 짓게 함(驅役自
心 令造善惡)’이라고 풀이했다. 대상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을 근거로 마음을 움직여 선업과 악업 등을 짓도록 하는
단계이다.
이상과 같은 과정이 마음이 작동할 때 항상 수반되는 다섯 가지 변행
심소이다. 마음이 대상을 보고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떤 행동으로 나타
나기까지의 단계를 절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변행심소는 이해
를 돕기 위해 단계적 과정으로 설명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일념
一念일 뿐이다. 따라서 변행이라는 심리적 과정은 매우 미세하여 범부들
은 인지할 수 없다. 성철 스님은 자재보살이나 등각等覺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들도 변행심소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마음의 행상을 알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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