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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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잠재적인 힘은 마치 씨앗이 땅 속에 있는 동안 보이지 않지만 싹을

           낼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것 같기 때문에 ‘씨앗[종자種子]’이라고 부르며, 아
           라야식 속에 저장된다. 훈습된 아라야식의 종자로부터 의식 활동이 이루

           어지고, 그러한 활동이 또다시 종자를 훈습시키는 끝없는 순환이 이루어
           지게 된다. 이렇게 아라야식의 종자에서부터 이 세상의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난다고 보는 설명 방식이 아라야식연기설이다.



             진여연기설



             이에 반해 진여연기설은 동아시아 불교의 전형적인 특징으로서, 이 세
           상의 모든 현상이 참된 마음인 진심眞心, 또는 진여眞如에 의거하여 생겨

           난다는 관점이다. 진심이나 진여는 대승 불교의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우주에 항상 변화하지 않고 존재하는 실체로서 우리의 생각이나 언어로

           미칠 수 없는 근본을 가리킨다. 불생불멸한 실체에서 생멸 변화하는 현상
           들이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진여연기설인데, 이는 사실 상호모순되는 개

           념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표적인 진여연기설의 논서인 『대승기신론』에서
           는 이 모순을 “실체인 한 마음一心에 진여문과 생멸문이라는 두 측면이 있

           다.”라는 설명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 한 마음에는 진여라는 문과 생멸이
           라는 문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즉 불생불멸한 측면과 생멸하는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실체인 이 한 마음
           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진여연기설다.

             중국 근대 시기에 유식불교와 『대승기신론』에 관한 논의가 다시 뜨거운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바로 서양 문화에 대한 대응방식이었다.

           유식불교는 교리가 논리적, 합리적이어서 칸트나 헤겔같은 서양 관념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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