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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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닙니다.
다시 명경明鏡을 예로 들겠습니다. 이것은 새삼 내가 지어낸 얘기가 아
니고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말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명경은 본래 청정합니다. 본래 먼지가 하나도 없습니다. 동시에 광명
이 일체 만물을 다 비춥니다. 그러니 광명의 본체는 참다운 무심인 동시
에 적조, 적광, 정혜등지定慧等持이고 불생불멸 그대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중생이 참으로 청정하고 적조한 명경 자체를 상실한 것처럼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무리 깨끗한 명경이라도 먼지가 앉을 것 같으면
명경이 제 구실을 못합니다. 그러나 본래의 명경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
다. 먼지가 앉아 있어 모든 것을 비추지 못한다는 것뿐이지 명경에는 조
금도 손실이 없습니다. 먼지만 싹 닦아 버리면 본래의 명경 그대로 아닙
니까? 그래서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것은 명경이 본래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자성自性이 본래 청정한데 어찌해서 중생이 되었나? 먼지가
앉아 명경의 광명을 가려 버려 그런 것뿐이지 명경이 부서진 것도 아니고
흠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다만 먼지가 앉아 명경이 작용을 완전하게 못
한다, 그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참다운 명경을 구하려면 다시 새로운 명경을 만드는 게
아니고 먼지 낀 거울을 회복시키면 되는 것처럼 본래의 마음만 바로 찾으
면 그만입니다.
내가 항상 “자기를 바로 봅시다.” 하고 말하는데, 먼지를 완전히 닦아
버리고 본래 명경만 드러나면 자기를 바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라고 할 때 마음의 눈이란 것도 결국 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표
현이 천 가지 만 가지 다르다고 해도 내용은 일체가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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