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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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선지식을 찾아 110성을 차례로 찾아갔던가.
                塵刹都盧在一庵
                不離方丈遍詢南.
                善財何用勤劬甚
                百十城中枉歷參.



             깨달음을 얻은 선사의 눈에는 자연법과 깨달음의 법이 둘이 아니라 하

           나였다. 곧 천지가 둘이 아닌 하나의 법신향[天地一香]임을 깨달았던 것이
           다. 53 선지식을 찾아다닌 것은 『화엄경』의 선재동자를 본받고자 함이었

           다. 그런데 깨닫고 보니 선재 동자처럼 선지식을 찾아 다녔던 수고로움이
           더 이상 필요 없으며, 천지가 동근이고 하나의 법신향임을 선사는 역설하

           고 있는 것이다. 방장실, 즉 한 장의 공간을 벗어나지도 않고 110성이라
           는 수많은 곳을 순방한다는 것은 활안活眼한 선승의 오도의 경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원오 국사의 부름을 받고 김해 감로사의 주지로 있을 때, 원감 국사의

           법력을 시험하고자 하는 한 선덕이 찾아와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선사는 천지를 꿰뚫는 걸림 없는 사자후를 다음과 같이 토

           했다.



                봄날 계수나무 동산에 꽃이 피었는데                    春日花開桂苑中
                그윽한 향기는 소림의 바람에 날리지 않네.  暗香不動小林風.

                오늘 아침 열매 익어 감로사를 적시니                   今朝果熟沾甘露
                무수한 사람과 하늘이 단 맛을 함께 하네.                無限人天一味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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