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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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보다 아름다운 색상이 어디 있겠는가. 늘 깨어 있는 투명한 영혼이 되
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 산이요, 또 물이다. 귀를 통한 물소리로 세속의 부
질없는 생각을 씻고, 눈을 통한 산빛으로 번뇌를 식히는 산사생활의 한가
함을 선사는 이렇게 노래한다.
날마다 산을 봐도 볼수록 좋고 日日看山看不足
물소리 늘 들어도 싫지 않네. 時時聽水聽無厭.
저절로 눈과 귀 맑게 트이니 自然耳目皆淸快
물소리 산 빛 속에 마음 편하네. 聲色中間好養恬.
늘 보는 산이지만 산은 늘 새롭고, 또한 늘 듣는 물소리라 싫증이 날
법도 하지만 들을 때 마다 시내가 들려주는 선율은 색다르다. 그것은 산
의 모양이나 물소리에 집착執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별심이 사
라진 상태에서 자연을 대하면 자연은 언제나 나와 합일이 된다. 때문에
귀와 눈도 내 마음을 여는 창이 되어 항상 맑고 시원한 산과 물소리를 전
해 주는 것이다.
선사들은 죽음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깨달음을
통해 영혼의 긴 여정을 마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감, 즉 ‘환지본처’를
말한다. 세속의 길을 버리고 올곧게 열심히 살아온 출가자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다. 임종을 앞두고, 진여본체의 섭리
와 자연의 이법을 깨우치려 하였던 선사는 존재의 부름에 귀의하는 즐거
움을 ‘고향에 돌아가는’ 즐거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살아온 세월 돌아보니 육십칠 년인데 閱過行年六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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