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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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서야 만사가 끝나도다.                       及到今朝萬事畢.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훤하게 열렸으니                     故鄕歸路坦然平
                앞길은 분명해 헤맬 일이 없겠구나.                      路頭分明曾未失.

                손에 겨우 지팡이 하나 들었을 뿐인데                     手中纔有一枝筇
                가는 길 다리 덜 피로할 것 같아 또한 기쁘네.               且喜途中脚不倦.


             비 내린 뒤뜰에 밤사이에 꽃이 피었다. 밤사이에 남몰래 핀 꽃향기가

           창을 열자 스며든다. 그때서야 꽃이 핀 것을 알았다. 비에 씻긴 공기도 상
           쾌하지만 꽃향기는 한결 맑아져 방안의 공기마저 신선하게 해 준다. 그래

           서 ‘효창신曉窓新’이라 했다. 하지만 웃는 듯 말이 없는 꽃이다. 꽃은 스스
           로의 존재에 우주의 생명을 안고 있기에 나고 죽음도 없고 절대적인 순간

           만이 있을 뿐 분별심도 없다. 필시 꽃은 무슨 생각이 있는듯하지만 말없
           이 웃기만 한다. 이것이 곧 염화미소의 메시지이다. 하지만 선원의 스님

           들은 이 웃는 의미를 모르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선사이다.
             그럼에도 편양은 만년에 자신의 삶에 대한 철저한 반조를 한다. 봄새

           가 우는 것이 산꽃이 지는 것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분별심에서 늙
           고 병드는 것을 슬퍼하고 한탄하는 것이라 하였다.



                봄새는 홀로 산꽃 시드는 걸 한탄하는데       春禽獨恨老山花

                꽃은 무심하여 스스로 슬퍼하지 않는구나.    花老無心莫自嗟.
                늙은 중은 매미의 버릇을 배우지 못해                  老僧不學拘蟬定

                새소리 듣고 꽃을 보며 해를 기울이네.                 聽鳥看花日欲斜.



             1292년 1월10일, 선사는 문도들에게 “사람이 우주공간에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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