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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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一味이고, 잠에서 깨어나 차를 마시고 싶어 차를 마시니 차 맛이 한결
좋다. 비록 암자는 외진 곳에 있어 찾아오는 사람마저 없어 더욱 한적하
지만, 그 마저 비어 부처님과 한 방에 있게 되니 그 인연 더욱 기쁘다는
선사이다.
눈을 뜨면 사방이 산이고, 그것을 아무리 보아도 싫지가 않으며, 때때
로 들려오는 물소리 그 소리에 짜증을 내 본 적이 없는 것이 산승들의 삶
이다. 순천 정혜사에 주석한 선사는 어느 봄, 유달리 푸른 산색을 보고,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서 부처님의 법이 자연 자체이며, 시냇물 소리
또한 부처님의 설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노래했다.
계족산 봉우리 앞 옛 도량 鷄足峯前古道場
이제와 보니 유달리 푸른 산 빛. 今來山翠別生光.
물소리 그대로 부처님 말씀이니 廣長自有淸溪舌
도를 일러 무어라 설할 것인가. 何必喃喃更擧揚.
산사 주위를 감싸고 있는 푸른 산 빛, 계곡을 흘러내리는 시냇물 소리
는 모두 진여의 모습과 소리 아님이 없어 이미 불법을 완벽하고 설하고
있다. 그러니 새삼 구차스럽게 도를 논할 말이 없다는 것이 선사의 생각
이다. 사실 깨달음의 경지에서 보면 산과 물, 초목, 이 모두가 도道 아님
이 없고 불성 아님이 없다. 하여 선사는 불법이 자연 자체이고 보면, 시
냇물 소리 역시 부처님의 설법이니 자연의 모든 현상이 곧 무정설법임을
설하고 있다. 선사의 담박하면서도 소박한 물외한인物外閑人의 선취는 몰
상식의 상식화를 이끌어 내어 가히 황금결의 선미를 자아내고 있다.
흘러가는 시냇물과 솔바람소리보다 아름다운 음악이 어디 있으며,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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