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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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가 순식간에 퍼져 대중에게 회자되고, 전국 각지의 운수납자들
이 선사의 설법을 듣기 위하여 감로사에 구름처럼 몰려 왔다고 한다. “봄
날 계수나무 동산에 핀 꽃”은 지난날 벼슬길에서의 득의를, “그윽한 향기
소림엔 날리지 않”는다 함은 벼슬이 대중 교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했음을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열매 익어 감로사를 적시”는
것은 이제 선문에 들어 불법 나눔의 큰 보람을 느낌이고, 마지막 시행
“무수한 사람과 하늘이 단 맛을 함께 한”다는 것은 하화중생과 다선일미
의 환희심을 노래한 것이다.
선승들은 예로부터 산과 물을 벗하며 살아간다. 사는 곳이 산속이니
의당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심한 자연 속에 무심으로 한가롭게 살아간
다. 여기의 한가로움이라는 것은 망중한忙中閑이다. 막연히 아무 일도 하
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한閑은 망忙이 있어서 한가로운 것이며,
선사의 한가로움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렇듯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차를 마시는 것은 무소득의 청정심을 보여 준다.
배고파 밥 먹으니 밥맛이 더욱 좋고 飢來喫飯飯尤美
잠에서 깨어 마시니 차 맛이 더욱 좋네. 睡起啜茶茶更甘.
사는 곳 외져서 찾는 사람 없으니 地僻從無人扣戶
암자 비어 기쁘게 부처님과 같은 방에 있네. 庵空喜有佛同龕.
무심 자적하고 청정무구한 선사의 일상생활을 엿 볼 수 있다. 아직 덜
깨달은 자는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이 뭘 그리 어려운 일이고, 깨달음의 길
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자고 싶어 자고 차를 마시고 싶을 때 마시는 일이
어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선사는 배고파 밥 먹고 그 맛을 음미하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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