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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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것이 서구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들 수 있
다. 배야排耶라고 일컬어지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물밀 듯 밀려오는 서양종교의 유입을 차단하는 계
기가 된 것은 물론이지만 더불어 불교정신을 새롭
게 자각하는 기회도 되었다. 이와 같이 근대 초기
불교의 전개 내지 근대불교학의 출발은 불교의 가 사진 1. 난조분유.
치를 일본 내에 각인시키려는 노력의 과정이 기본
적으로 전제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노력의 과정에서 실제 불교학의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마
련되었다. 전통적인 한문경전에 의거한 불교의 정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론적 토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것은 서구의 불교학적 방법
론, 즉 산스크리트어·팔리어·티베트어 등 불교 원전어를 통한 문헌 고
찰 방법론을 도입해 기존의 한문불교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는 것으로,
서구의 방법론을 도입하는 계기로 서양에 유학하는 불교인이 나타난 것
이다. 물론 근대 초기 서양으로 유학한다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
했다. 여기에는 종단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
이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서구사회에 눈을 돌려 서구문물을 이해하고
자 시찰단을 보낸 종단이 생겨났고, 이들 종단들은 시찰단의 귀국 이후
서구로 유학생을 파견하였다.
서구의 문물과 종교적인 사정을 알기 위해 근대기 일본 불교계에서 최
초로 시찰단을 파견한 곳은 정토진종 본원사파(서본원사파)로, 1872년 1월
시마지 모쿠라이島地黙雷, 아카마츠 렌죠赤松連城 등이 유럽으로 시찰을 떠
나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9월에는 진종대곡파(동본원사파)에서 겐뇨 법사
現如法嗣, 이시카와 슌타이石川舜台 등이 서구로 출발하여 시찰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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