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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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 가운데 태어나 사람의 몸을 얻는 것, 사람 가운데서도
대장부, 대장부로서 독서할 줄을 아는 것, 책 가운데서도 불서
[竺墳]를 아는 것, 불서 가운데서도 선종[宗門]의 불서를 아는 것
이야말로 마치 설산에 살고 있는 소의 젖을 짜서 우유[乳]를 얻
고, 다시 그 우유에서 낙酪을 얻으며, 낙에서 생소生酥를 얻고,
생소에서 숙소熟酥를 얻으며, 숙소에서 제호醍醐를 얻는 것에 해
당한다. 만약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참으로 선문헌에 대해 구여직 자신이 얼마나 진지하고 대단한 자긍심
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만큼 구여직은 『지월
록』을 편찬하면서 옛날의 전등사서에서 내용을 발췌하여 그대로 수록하
는 것이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고 있어서 일종의 주해서와 같
은 역할을 보여고 있다. 곧 과거칠불로부터 송대 대혜종고에 이르기까지
제조사의 게송, 보설普說, 기봉機鋒, 어구語句 등을 조합시켜서 기록하였다.
한편 구여직 반담의 원서原序 다음에 붙어 있는 엄징嚴澂의 발원문은 『지월
록』의 누각鏤閣에 붙인 것[刻指月錄發願偈]으로 불법에 대한 지극한 염원이 잘
드러나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여기에는 『지월록』이야말로 제명 그대로 불법
에 대한 올바른 지남이라는 것을 찬탄한 것이 엿보이는데, 다음과 같다.
“불전[釋典]에는 비록 종宗과 교教의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세존
께서는 ‘나는 49년 동안 세간에 머물렀지만 일찍이 한마디도
설법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느 교敎인들 종宗이 아
니겠는가. 선종[宗門]을 돌아보건대 반드시 진실한 깨침에 의
지해야지 털끝만큼도 거짓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옛적의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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