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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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가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는 것을 말한다. 생명 진화의 역사는 개개의
생명체가 나고 죽는 것과 같이 생명종도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 변화하
는 무상無常함을 보여준다.
무자성無自性 공空
2)
생명세계는 왜 무상이어야 하는가? 개개의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그
들은 모두 인연이 화합하면 나타났다가 인연이 흩어지면 사라지기 때문
이다. 그러면 생명세계는 왜 인연의 화합으로 나타나고 인연의 흩어짐으
로 사라져야 하는가, 왜 인연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가? 그
들은 그 자신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책상 앞에서 원고
마감 시간을 넘겨 가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
재다. 왜 그런가? 나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물을 마셔야 하고, 숨을 쉬
어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음식과 물과 공기라는 조건, 즉 연緣에 의존해
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이렇게 나는 연緣에 의존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존재한다고 해서 다음 순간에도 나의 존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일체의 모든 존재가 예외 없이 다 그렇다. 개개의 생명체 모두가
그렇고, 생명종 모두가 또한 그렇다. 연緣이 바뀌면 지금 이 순간 존재하
는 생명체나 생명종이 다음 순간 사라질 수 있다.
스스로 존재함을 자성(自性, svabhava, self-being)이라고 한다. 스스로 존
2) 생명세계만 무상한 것은 아니다. 일체가 무상이어서 제행무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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